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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도서관 좋아 :D

[책] 장장 50년에 걸친 스토리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by ClaireB 2021. 1. 12.

처음부터 이 책을 읽으려했던 것은 아니었고,

전자도서관을 둘러보면서 읽을 만한 소설이 있나 찾다가

그냥 책 표지와 제목 형식이 익숙해서 대출했다.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책은 이 전에 1권 읽어보았었기 때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열린책들. 2014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는 위의 요나스 요나손의 데뷔작보다 훨씬 훨씬 더 재밌었고,

상당히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을 수 없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1960년대 당시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흑인 여자로 태어난 '놈웨코'가 어떤 파란만장한 삶을 거치며 결국은 ~~~일까지 하게 되는지!

이게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소설이니깐 ^ㅡ^) 우연에 우연이 겹쳐지는지.

책의 후반부에는 등장인물 중 누군가의 대사였던 "이거 완전 막장 드라마구만!"(← 정확하게 기억 안 나는데 '막장 드라마' 단어가 들어가는 비슷한 대사였음)란 표현이 어찌 보면 이 책을 대변하고 있을 정도로!

넘 유쾌하고 재밌다. 그러면서 일부분은 사회를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책의 속속들이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세계사)들이 언급되어 있고,

여러 세계적 정세, 변화와 맞물려 놈웨코의 삶도 전개되기 때문에 

이런 점에 초점을 두고 읽는 것도 아주 재미있을 것이다.

 

제1부 첫 시작부터 넘 재치있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멍청함과 천재성의 차이는 천재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천재성에는 한계가 있으니깐, 즉, 멍청함에는 한계가 없다는 얘기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끝도 없이 멍청할 수 있다고 ㅋㅋㅋㅋ

이 글귀를 처음 읽고 막 웃었다.

 

/

이 책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 출생 '놈웨코'의 인생을 주(主)로,

그리고 스웨덴의 '홀예르2'의 인생을 부(副)로 다루고 있다.

 

그 중, 이 포스팅에서는 놈웨코의 일대기를 위주로, 재밌었고 기억하고 싶은 사건들을 아래에 정리했다.

 

196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
출생

놈베코는 1961년 봄에 소웨토의 한 오두막에서 태어났다.

이 1960년대는 정치 지도자들이 놈베코 같은 아이들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정도고 여기던 시대였다.
당시 수상 "왜 까만 사람들이 학교에 다녀야 합니까? 기껏해야 땔감이나 물을 나르는 사람들 아닌가요?"

 

또한, 1962년에는 남아프리카의 저항 단체 ANC의 테러리스트인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를 포획, 만델라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케이프 주 앞바다의 한 감옥 섬에 보내짐.

196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
5살, 분뇨수거인 다섯 살 때부터 분뇨통을 나르며 분뇨통을 세기 시작
→ 자라나면서 곱셈, 나눗셈 등 더 복잡한 계산도 할 수 있게 됨.
197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 공동변소
14살 분뇨수거인 경력 9년
소웨토 B 섹터의 공동변소 신임 관리소장이 됨.
놈베코는 사무실에 라디오를 틀어놓음(토론 전문 방송)
197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
14살 또 기막힌 배경을 갖고 있는 호색한 '타보'는 소웨토의 오두막에 살고 있었는데, 책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두막의 리놀륨 장판 아래에 '돈과 다이아몬드'를 묻어 놓았고, 치아 사이에도 다이아몬드를 박아 놓았다.
→ 놈웨코 영어 배움
→ '타보' 사망 후 놈웨코는 타보의 다이아몬드를 챙겨서 소웨토를 떠난다.

 

 

197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15살 열다섯 번째 생일 다음날, 술에 떡이 된 한 사내의 차에 치임.
운전자는 '판 데르 베스타위전 엔지니어'
재판. 놈웨코가 피해자인데도! 놈웨코에게 판 데르 베스타위전을 위해 7년간 일하는 형벌이 내려진다. <도형수 생활>
197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펠린다바 연구소
15살
연구소 1년차
요하네스버그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펠린다바 연구소.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핵강대국이 되기 위해 비밀리에 연구 중.
그런데, 판 데르 베스타위전 엔지니어는 연구소장인데 "똥멍청이"였음. ㅎㅎ..
197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펠린다바 연구소
16살 말
연구소 2년차
엔지니어는 본인이 못 알아보고 못 알아듣는 각종 과학&수학을 청소부인 '놈웨코'가 다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됨.
놈웨코가 연구소 안을 자유로이 다닐 수 있도록(절대로 좋은 마음 아니었음!) → 열일곱 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엔지니어는 놈베코 여권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줌.
    엔지니어는 놈웨코를 <네이름이뭐더라>라고 부름.
놈웨코는 서서히 알게 됨. 이제 이 펠린다바 연구소의 비밀(핵 개발)을 너무 많이 알게 되어서 본인의 7년 도형수 생활이 끝나서 연구소를 나가게 되면 살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생존을 위해 굳이 7년이 넘어간다는 것을 엔지니어에게 인식시키지 않음.

 



▲ 이것도 웃기다 ㅋㅋㅋㅋ

 

197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펠린다바 연구소
17살

원자폭탄 1기 완성.
놈웨코는 미국 워싱턴 백악관 '제임스 얼 카터 Jr. 대통령'에게 편지를 씀.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늘 만취 상태에 있는 한 얼간이의 지휘하에 3개월 후, 약 3메가톤급의 원자폭탄 1기를 터뜨릴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실험은 1978년 초에 칼라하리 사막,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위 26도 44분 26초, 동경 22도 11분 32초 지점에서 시행될 예정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필요 시에 사용하기 위하여 같은 유형의 폭탄을 6기 더 갖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98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펠린다바 연구소
 

6번 원자폭탄까지만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 결과, 제4번과 5번 폭탄이 완성되고 난 뒤에도 병행적인 제조 과정은 계속되어서 제6번 폭탄이 만들어졌고... 또 제7번 폭탄도 덩달아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폭탄이었다.

이 황당한 실수를 발견한 하녀는 이를 그녀의 상관에게 알렸고, 상관은 심히 난처해졌다.

198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펠린다바 연구소
25살
연구소 11년차
→ 엔지니어에게는 7년의 형기가 11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지 않았다.

(이 펠린다바 연구소에는 중국 3자매가 있어서, 놈웨코는 중국어(우어)를 배운 상태)

구이저우 성의 총서기 '후진타오'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왔을 때,
중국어 통역으로 갑작스럽게 놈웨코 투입.
후진타오와 친해짐.

 

 

 

 

 

    펠린다바 연구소에 있던 두 모사드 요원 A, B → 이스라엘 관여

모사드요원 A가 엔지니어를 차로 깔아뭉개 죽임.
놈웨코를 죽이려 했는데, 놈웨코와 모사드요원의 합의.
1987년 11월 12일 펠린다바
→ 스웨덴
1987년 11월 12일 펠린다바를 떠났다 
스웨덴 공항 정치망명 신청 
외교우편을 이용한다는 계책 
    홀예르2를 만나게 됨.
외교우편이 바뀜.
이스라엘로 갔어야 하는 7번째 원자폭탄이 스웨덴에 도착.

우편물이 뒤바뀐 것을 발견한 후 A 요원이 벌인 추적 작업 
1988년
@스웨덴 그네스타
28살

1988년 11월 17일은 놈베코가 철거예정 건물에 들어온 지 정확히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남편에 만족할 수 있는 여자를 과연 찾아낼 수 있을까?

둘 다 곧 스물여덟 살이 되는 성인들

홀예르&홀예르 사 

 

 

현실에서는 홀예르가 스웨덴 수상과 국왕 외에는 아무에게도 폭탄을 넘기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폭탄에서 홀예르1과 홀예르1의 여자친구인 '휘발류녀(셀레스티네)'를 떼어놓기 위한 계획
1) 휘발유녀가 베개 배달 일을 맡도록. 온 세상에 대해 화를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짜 번호판을 붙착한 차량을 불법적으로 운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일에 흥미를 느낌
2) 홀예르 1의 경력을 위조하여 <택시헬리콥터>사의 잡무를 맡는 직원으로 근무하도록

 

 

홀예르2는 놈베코가 아주 복잡한 수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창고 안의 베개 수를 계산한 것.

 

/

 

홀예르는 거의 숨도 쉴 수 없었다. 자기가 자기 형제와 완전히 다르다는 말은 그가 태어나서 들어 본 최고의 찬사였다.

 
/

1994년
@스웨덴 그네스타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핵무기 폐기
소수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정권을 양도하기 직전에 시작
그 과정을 감시한 국제 원자력기구
1994년
@스웨덴 그네스타
  7년 후 TV 뉴스에 나온 홀예르1을 보고
모사드 요원 A가 찾아옴
1994년
@스웨덴 그네스타
  국가 특수임무 부대의 공격
진입작전은 1994년 8월 11일 밤 10시 32분에 개시
    감자 사업

계~~~속 긴 기간 수상의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허사였던 것 
▼ 
그래서 8개년 계획으로 홀예르2를 대학에 보냄.
수상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되자.

 


홀예르 2의 박사학위 논문 <성장 요인으로서의 원자폭탄. 핵 재앙의 긍정적인 측면들>

※ 핵 전쟁

-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핵전쟁만으로도 무려 2천만 명 사망 가능

-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엄청난 양의 먼지구름이 몇 주 만에 성층권까지 뒤덮어, 햇빛이 지표면을 다시 덥히려면 10년 필요

- 하지만 홀예르 2의 주장에 따르면 이를 통해 세계 경제는 오히려 비약적인 발전

갑상선암 발병률이 20만 퍼센트 증가(20퍼 아니고 20만퍼), 실업률 급감.

→ 밥벌이 원천이었던 햇빛 잃게 된 휴가 천국 지역 주민들이 전 세계 대도시로 대거 이주

자원 재분배 결과

→ 수많은 성숙한 시장이 일거에 미성숙한 시장으로 바뀌어 시장 역동성

→ 태양전지 분야에서 중국의 독과점 사실

등등

2004년   홀예르 2는 정치학 학위과정을 거의 마쳐가고 있었고
경제학 분야에서는 박사학위 취득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홀예르 1의 고구마 행위
2007년   2007년 4월 <스웨덴 정치> 발간
    2호에서 또 홀예르 1의 고구마 행위

 

중국 주석이 된 '후진타오'가 스웨덴 방문

그 사실을 신문기사에서 읽은 놈웨코, 홀예르 2는 후진타오를 만나기로.

후진타오 주석이 지나가는 광장에서 크게 우어로 외침.

→ 스웨덴 원폭 보유하고 있다고 간단히 말하고

후진타오 주석이 칼 구스타브 16세 국왕,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수상과의 만남을 주선.

(그냥 웃지요 ㅋㅋㅋ)

 

그리고...

또 이런 저런 사건을 거쳐

결국 원자폭탄은 중국으로!

 

"살다 보면 때로는 올바른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 때는 나쁜 일이나, 혹은 조금 덜 나쁜 일을 할 수 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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